

윌라의 시선으로 엄선한 스무 개의 특별한 이야기, 스무 번째
※이 오디오북은 윌라가 독점적으로 계약하고 직접 제작한 윌라 오리지널 오디오북입니다.
윌라와 브런치가 함께한 최초의 브런치북 오디오북 출판 프로젝트!
도시를 탐험하는 산책자를 위한 안내서 <이름 있는, 없는 장소들에 대한 탐험>
일상의 공간을 건축가의 시선으로 잘 표현한 작품이다.
- 심사위원 변영주 감독 (<화차> 연출, '방구석 1열' 출연)
광장, 공원, 스퀘어, 골목, 계단…
장소를 분류하는 이름이 그 장소의 성격을 모두 표현하기에 맞는 그릇이 아닐지도 모른다. 관념화된 분류에서 벗어나 장소 하나하나에 집중해보며 길을 걷다 무심히 지나치더라도 모를 이곳저곳에서 장소의 수만큼 다양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이름 있는, 없는 장소에 대한 구분 없이 하나하나에 집중해 실재하는, 경험하는, 감각으로 느끼는 장소에 대한 탐험을 한다.
건축이나 도시를 이야기하는 방식이 전문성의 테두리 안에 갇혀 확장의 시도에 무관심하다는 사실을 예감한 지는 오래다. 전문성을 벗어던진 날 것의 가능성들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세상의 모든 전문적이고 특수한 말들은 일반화 과정을 거치며 본질에 가까워진다고 믿는 편이다. 눈에 보이는 것의 뒷면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생각의 반대를 들여다보고, 보지 못한 세상의 이면을 보고자 한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내게 광장은, 길은, 벽은, 운하는, 모퉁이는 그것 자체이지 않다.
“아무것도 아닌 곳, 만질 수 없는 곳, 실제로 비물질적인 곳, 넓이를 갖는 곳, 외부에 있는 곳, 우리가 이동해 가는 도중에 있는 곳, 주위 환경, 주변 공간.… 수많은 작은 공간 조각들이 있다.”
_ 공간의 종류, 조르쥬 페렉(Georges Perec)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 도시 속 장소들의 수많은 평범한 것들이 의미를 갖고 눈과 손으로 들어온다.
배경으로 스윽 지나가도 무관할 만큼 이야기에 딱 맞는, 이야기를 품을 만큼 여백이 있는 장소를 엑스트라가 아닌 주인공으로 시점을 바꿔 바라본다. 그것도 이름 있는, 없는 모든 장소들에 관한.
광장과 광장 같은, 가장자리, 길과 갈래, 땅 아래와 동굴 안, 과거와 현재 사이의 어딘가, 그 각각의 어느 모퉁이, 자투리 공간, 오래 비워진 공터, 쓸모를 따지기도 어려운 작은 턱, 건물과 건물 사이, 높은 곳과 낮은 곳 사이, 계단과 계단을 연결하는 참.
장소에 대한 강렬한 경험은 한 번 우리 몸을 거쳐가면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의도하지 않은 순간 다시 재생되곤 한다. 그래서 갑자기 찾아온 장소의 기억으로 인해, 그때 그 여행의 장소로 다시 우리를 소환하기도 한다. 장소는 그만큼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깊게 스며있다. 도시 안에서 우리의 일상은 늘 반복되는 듯하지만 다른 시점으로 바라보려고 하기만 해도 도시는 다채로운 풍경을 드러낸다.
도시를 느린 걸음으로 산책해보자.
템포가 느려지면 보이지 않던 모습이 보일 것이다.
도시를 조금 삐딱하게,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자.
바라보는 구도가 바뀌면 이미 다른 풍경을 드러낼 것이다.
탐험을 즐길 준비가 되어있다면 누구나에게
즐거운 산책, 재미있는 도시탐험이기를.
브런치북: https://brunch.co.kr/brunchbook/oatlee
*브런치X윌라 수상작 오디오북은 윌라의 시선으로 엄선한 스무 개의 특별한 이야기입니다.
귀리 지음 | 윌라 출간 | 최정현 낭독
일정한 시간을 한 도시에서 살다 보면 몸에 스며들 듯 만들어지는 장소에 대한 기준이 있다. 낯선 도시 파리에서의 삶은 건축과 도시를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다름에서 오는 차이가 관점을 바꾸어주었다. 그 후로 오랜 시간 혼자 질문하고 드로잉하고 글을 쓰며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이름 없는 장소들을 탐험해왔다.
필드에서의 작업은 디자인을 구현한다는 관점에서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았다. 결국 건축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만드는 작업이므로. 하지만 모든 일은 오랜 시간 하다 보면 관념의 늪에 빠지기 마련이다. 도시탐험은 그러는 동안 큰 위안과 영감을 주는 세계였다. 어느 날, 이렇게 조금만 더 시간을 지체하다가는 건축을 좋아하는 마음이 식어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새로운 방식의 삶을 모색하게 되었다. 건축가로서는 그 나름의 길대로, 도시탐험 작가로서는 ‘귀리’라는 필명으로 두 가지 방식의 삶을 살아보려 한 것이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은 채 이곳과 저곳에 서 있는, 경계에 있는 사람이라 스스로를 생각한다. 그 이중성에 늘 매료된다.
세상의 마이너 한 것에 관심이 가는 개인적인 성향에서 시작된 도시탐험은 이미 나의 세계에 주류가 되었다. 너무 익숙해서 생각하지 않는 곳,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곳, 가끔은 잘 아는 곳이지만 그래서 잘 모르고 있는 장소들을 찾아 계속 탐험하듯 살아가고 있다.